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일곱 살 때는
서울 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하며 ‘피아노의
천재’라고 불린 정명훈.
오늘날 21세기 악계를 이끄는 영향력 있는 지휘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그가 손꼽히기까지 뒤에는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 이원숙 씨가 있었다.
해방 직후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어머니는
시장에 천막을 치고 국밥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머니 곁에서 놀다 보니
어느덧 시장 사람들의 어투를 따라하더니
얼마 안 가 행동까지 거칠어졌다.
안 되겠다 싶은 그는 외상으로 피아노를
사 들여 아이들에게 레슨을 시켰다.
그 뒤부터 일곱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곳은 바로 피아노 옆이었다.
피아노 레슨은 형과 누나들 차지였다.
형제자매가 많다 보니 어린 정명훈에게까지
돌아갈 기회는 많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의 담임선생님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명훈이는 국어 책 읽을 때도 꼭 가락을 붙여서 읽어요.”
순간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깨닫고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민을 결정한다.
부족한 살림을 꾸려 미국까지 갔지만
낯선 환경 때문인지 정명훈은 피아노를 등한시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왜 피아노를 치지 않느냐?'며
나무라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받은 팁을 차곡차곡 모아 할부로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해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뒤 정명훈은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한 기자가 정명훈에게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됐습니까?”
라고 묻자 그가 말했다.
“아무리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아이라도
박자가 안 맞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지적보다는
'너는 어쩜 그렇게 잘 하니' 하고
늘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좋은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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