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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실다움 2013. 3. 2. 21:11

   내가 다만 인정하기 주저하고 있을 뿐  
  

   내 인생도 꽃잎은 지고 열매 역시  
   시원치 않음을 나는 안다   
   담 밑에 개나리 환장하게 피는데   
   내 인생의 봄날은 이미 가고 있음을 안다   

   몸은 바쁘고 걸쳐놓은 가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거두어들인 것 없고  
   마음먹은 만큼 이 땅을   
   아름답게 하지도 못하였다   
   겨울바람 속에서 먼저 피었다는 걸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나를 앞질러가는 시간과 강물  
   뒤쫓아오는 온갖 꽃의 새순들과  
   나뭇가지마다 용솟음치는 많은 꽃의 봉오리들로   
   오래오래 이 세상이 환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선연하게도 붉던 꽃잎 툭툭 지는 봄날에     

    

   도종환